<무빙> – 세대를 연결하는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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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웹툰 작가 강풀과 박인제 감독, 디즈니 플러스의 65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만난 TV 시리즈 <무빙>입니다. 류승룡, 한효주, 이정하, 조인성, 고윤정, 김성균, 김희원, 문성근, 김도훈, 김신록, 박희순, 류승범, 양동근, 차태현, 조복래, 김종수, 유승목, 심달기, 박병은, 최덕문 등 엄청난 출연진을 자랑하죠. 8월 9일부터 공개를 시작해 9월 20일 20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자신들의 고통이 대물림되지 않길 바랐지만, 그들의 흔적을 끈질기게 뒤쫓는 세력은 특별한 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죠. 이에 우리의 주인공들은 시대와 세대를 넘은 거대한 위협에 함께 맞서 마침내 찾아올 평화를 위해 싸우기 시작합니다.​ 넷플릭스의 자유도와 자본 덕에 이리저리 시도되었던 초능력 소재 한국 드라마가 이번엔 디즈니 플러스를 만났습니다. 그것도 단일 시리즈로 역대 최고 제작비인 650억 원이 투입되었죠. 넷플릭스가 아닌 디즈니 플러스를 선택한 이유로는 디즈니 플러스가 배속 시청을 지원하지 않아서라는 원작자 강풀 작가의 인터뷰가 소소한 화제가 되었더랬습니다.​ ​ 그렇게 <무빙>은 20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초능력이라는 공통 분모로 모인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미래적이고 휘황찬란한 소재로 겉을 꾸민 작품일수록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죠. 화려한 CG로 치장한 초능력들이 확실한 눈요기가 되지만, <무빙>은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어 초능력의 유무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따라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대표하고 또 대변합니다. 크게는 부모와 자식, 오래된 연인과 갓 움튼 연인 등 이들의 관계를 정의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사랑이 되겠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변주해 이런 사랑도 사랑이고 저런 사랑도 사랑임을 꽤나 따뜻한 시선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관계를 최소 하나쯤은 준비하여 들려줍니다.​ ​ 덕분에 돈깨나 쓴 초능력물을 기대하고 틀면 가장 많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적정량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달달함입니다. 그것도 하나도 둘도 아닌 세 커플의 이야기죠. 봉석(이정하)이와 희수(고윤정), 두식(조인성)과 미현(한효주), 주원(류승룡)과 지희(곽선영)입니다. 고등학생, 20대, 그리고 중년(?)까지의 다양한 연령대를 담당하는 각 커플들 덕에 누구든 본인의 경험 혹은 이상을 투영하기는 딱 좋죠.​ 클리셰라고 불리는 뻔한 것들이 왜 그런 오명을 감수하면서도 매번 등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몽글몽글하고, 지금 내 품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람만 곁에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따스함이 배어나오죠. 오히려 정통 로맨스를 지향했다면 만족스럽지 못했을 함량이 초능력물을 만나 이 드라마에겐 사실 이런 면모도 있었다는 반전 매력으로 기능합니다.​ 소재와의 조화도 꽤 적절한 편입니다.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으로 상대가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려는 것을 눈치챈다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으로 창문 밖에서 기다리는 등 일반적인 로맨스물에서는 연출할 수 없는 장치들로 장르의 효과를 더하죠.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하늘만 바라봤는데 땅에서 걸어왔다며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대사도 물론 있겠구요.​ ​ 연인들의 사랑이 있다면 부모와 자식의 사랑도 있습니다. 미현과 봉석, 주원과 희수, 재만(김성균)과 강훈(김도훈)이 있겠죠. 자신이 누렸던 것은 자식들이 몇 배로 누리길 바라고, 자신들이 받았던 고통은 자식들이 조금도 물려받지 않길 원하는 하해와도 같은 사랑입니다. 그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 하나쯤은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숭고함은 초능력의 유전과 그들을 쫓는 세력의 등장으로 확실히 시각화되죠.​ 안기부는 초능력자들을 몽땅 잡아 죽을 때까지 온갖 명분으로 부려먹습니다. 1세대 초능력자들은 각자의 이유로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들의 손에 놀아났지만, 그 불행함을 누구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죠. 보통의 부모들이라면 크고 작은 희생을 하게 될지언정 말 그대로 목숨이 걸린 일은 맞닥뜨리기조차 어렵지만, 이들의 존재는 그런 부모들의 의지를 화면 밖으로까지 꺼내는 장치가 됩니다.​ ​ 이처럼 <무빙>은 극중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을 드라마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 저런 감정들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저런 감정들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일들을 끌어들이는 쪽에 가깝죠. 잘못 사용했다가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끼워맞춘다는 인상을 주기 쉬운데, 그 위험성을 최소화하려면 사건의 형태를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무빙>의 현재 시점 이야기들이 별 구조가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무빙>은 많은 에피소드들을 등장인물들의 과거사와 배경을 풀어놓는 데 사용하고, 정작 현재 시점의 사건들을 전개하는 과정은 막상 따져 보면 꽤나 짧은 편이죠. 그 많은 아군들 차례가 지나가면 심지어는 안기부나 북한 쪽 등 악당 위치의 인물들까지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 있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모두 밝히려 합니다.​ ​ 또한 언급했던 사랑 이야기에 제대로 속하지 않는 인물들은 다른 캐릭터들과 비슷한 비중을 배분받았음에도 극에 제대로 섞이지 못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계도(차태현), 프랭크(류승범), 기수(신재휘), 한별(박한솔) 등이 대표적이죠. 특히 계도와 프랭크는 별도의 에피소드까지 할애해 가면서 들인 노력에 비하면 다른 캐릭터들에게 잘 나눠주어 충분히 대체 가능한 역할밖에는 수행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사랑 이야기와 섞이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잔혹하기만 한 액션은 들인 자본에 비해 다소 실망스러운 CG로 점철되어 있고, 성인들끼리의 대결도 심심한 마당에 봉석이나 희수가 끼어들면 급작스레 유치해지기까지 하며 몰입을 떨어뜨립니다. 동네에서 저마다 붙었던 싸움을 넘어 세대, 기관, 국가로 조금씩 커지는 스케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죠.​ ​ 그럼에도 뚜렷한 장르물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준다는 자부심에 취하거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특별하다고 믿는 작품들이 빠지고 말았던 덫에 <무빙>은 걸려들지 않았죠. 더 커다란 세계관과 막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첫 번째 시즌의 문을 닫았는데, 과연 이 열기를 어떻게든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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